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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연기를 통해 바라본 인간의 삶

category Self-Improvement/정토불교대학 2018. 11. 1.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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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십이연기


     무명, 행, 식, 명색, 육처, 촉, 수 , 애, 취, 유, 생, 노사를 통해 인간의 괴로움의 원인을 연기법을 통해 부처는 알아보고자 했다. 연기법이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는 관계'를 말한다. 마치 선이 있으면 악이 존재하는 것처럼 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악이 존재 하지 않는다. 착함이 있으면 나쁨이 존재하고, 착함이 없으면 나쁨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명은 무상한 세상을 의미한다. 무상은 카오스 즉 혼돈의 세계라고 이해하면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현재 혼돈과 비슷하다. 일정하고 영원히 유지되는 것없이, 나무에서 나뭇잎이 떨어지고, 생명이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1분 1초도 변함없이 일정하지 않는 것이 없기에 부처는 이를 무상의 세계 인생무상이라고 명하였다. 마치 우리는 영원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도덕성을 예로 들어보자. 도덕성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동 규칙과 관념을 정의해 놓은 것이다. 도덕성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도덕성 있게 살아야 되는 행동과 생각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도덕성은 현실의 인간이 행해야할 것들을 머리속으로 도덕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명명한 것이다. 즉 현실에 어떠한 행동을 명명한 것이지, 영원한 도덕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행은 생명의 생존을 위한 의지를 말한다. 행이 식보다 선행되는 것은 밖과 안이 구별되는 식이 있기전에 이미 생명은 생존을 위한 꿈틀거림이 시작한다. 세포가 식을 구별하기 전에 생명 유지를 위해 움직이는 것을 보면 식보다 선행되는 행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식은 안과 밖을 구별하는 것이다. 즉 생명 유지를 위해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것을 식이라고 한다. 


    명색 명은 정신적인 것, 색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한다.


    육처는 감각기관을 말하며, 안이비설신의를 말한다. 눈, 귀, 코, 혀, 몸, 의식을 말하며 이를 통해서 세상의 물질들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촉은 접촉을 의미한다.


    수는 좋고 나쁨을 말한다. 생명의 에너지를 높여주는 것은 좋다고 느끼며, 생명의 에너지를 낮추는 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느낌이다.


    애는 수를 통해 나오는 애착이다. 좋은 것을 가까이 하려는 애가 나타고, 싫은 것을 멀리하려는 착이 나타난다. 


    취는애를 통해서 비롯된다. 취는 좋아하는 것을 넘어 한 몸이 되려는 것을 말한다. 즉 집착 고착을 의미한다.


    유는 취를 통해서 비롯된다.  취 다음 유가 나타나는 것은 마치 이와 같다. 2~3살이 되면 거울을 보면서 웃는 아기들이 있다. 이는 즉 자기 자신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촉 수 애 취 를 통해서 즉 유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하게 되는 순간이다. 


    유가 있기에 생이 나타나며, 생이 있기에 노사가 나타난다. 




    인간의 삶


     유가 있기에 생이 있다. 생명은 어떤 합목적성을 띄는 도구와 달리 살아가는데 어떠한 목적이 없다. 즉 살고자 하는 의지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인간이 방황을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성이 없다면 동물들 처럼 생명 유지에만 관심을 두고 잘 살아갈테지만, 이성이 있는 인간은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데카르트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까지 나오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의 삶에 목적을 두기 시작했다. 중세시대의 기사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영주를 보호하는 것이 되었을테고, 오늘날에 와서는 대통령 보디가드가 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위해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탐진치


     이미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성장을 충분히 달성했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자 했다. 더 비싼 옷, 더 비싼 차, 더 비싼 집 그리고 등등. 소비문화들이 사회에 만연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고통받는다. 그리고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힘들게 모아 둔 돈을 소비한다. 우리의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의식주만 존재하면 생명을 유지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 남들의 시선에 의식하며 생존에 필요한 것 이상의 것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이것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것을 얻기위해 자살을 하고 많은 괴로움을 수반하기에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육체적 생존과 정신적 만족


     70, 80년대만 봐도 가난한 판자촌에서도 잘 살았다. 하지만 현대는 전망좋고 햇빛 잘드는 아파트에서 살아도 뭐가 이렇게 불만이 많은지 모르겟다. 21세기 유망직종으로 심리상담사, 의사들이 나올 정도이니, 세상 사람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왜 우리는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정신적 스트레스에서 잡혀서 살까? 이는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탐욕은 불에타는 장작과 같아서 추구할 수록 욕심은 커져만 간다. 이렇게 욕심이 커지고 이상만 높아지기에 현실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애취의 결과물이다. 생명은 생존을 위해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가까이두고, 해로운 것을 멀리두려고 한다. 이것이 더욱 커져 취착이 된다면 더 많은 것을 얻기위해 노력한다. 


     어떻게 보면 생존을 위해 좋은 것을 많이 취하고 나쁜 것을 멀리 취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해는간다. 촉수애취로 비롯하여 인간의 무지는 어쩔 수 없는 근본적 무지일 수 밖에 없다. 부처는 12연기를 통해서 인간의 괴로움을 설명하였고 이를 환멸연기로 고리를 끊어 즉, 명이 없으면 행이 없고, 행이 없으면 식이 없고 .. 즉 노사가 없어진다라는 괴로움을 없애는 진리를 얻게 되었다. 무명을 깨뜨려야 노사에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존을 위한 욕구

    욕구가 커지면 욕심

    욕심이 커지면 집착

    욕구가 충족이 안되면 어릴 때 애기는 울었다. 젖을 물리지 않으면 애기는 울었다. 욕구가 충족되면 만족감을 얻었다.

    어른이 되서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 의식주.. 이런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괴로움이 생긴다. 이것이 충족되면 행복해 진다.

    애,취가 있기에 영원한 나를 만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노사에 괴로워한다.


    무명 속에서 모든 생명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수가 발생하였고 수는 애취를 만들어 곧 자신을 만들고 유, 유는 곧 생과 노사를 만들어낸다.


    무명은 무상한 것, 즉 영원함 없이 항상 바뀌는 것임을 알고 세상도 변하고 자신도 생과 사에 있으니 탐진치 삼독에 빠져 괴로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살아야할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며, 좋고 나쁜 것에 집착하여 자신을 잃어서는 안된다. 즉 이것은 자유로운 해탈이요, 괴로움이 없는 열반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기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또 그것에 집착하여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니 곧 이것이 번뇌가 된다. 인간의 무지는 무명에서 비롯된 필연적 무지임이기에 인간이 잘못이 아닌 인간이기에 무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니 이를 깨우쳐 생노사의 괴로움에 벗어나야 하고, 탐진의 마음을 깨우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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