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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위한 깨달음 : 성공의 법칙 6가지

category Self-Improvement/HigherSelf 2018. 9. 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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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


    [그림 1]


     사업체를 운영하다보면 전문분야 기술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주로 외주를 주어 그들이 가진 기술을 통해 제품을 만든다. 이는 사업체가 필요한 모든 분야를 연구하는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는 비즈니스 전략이다. 비지니스에서 외주를 주는 것은 좋은 전략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외주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배운다고해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위험하다. 그것을 검증하고 실제 현실과 대조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아는 것과 깨달은 것은 천지차이로 단순히 무언가를 배우는 것에만 집중해서는 성장할 수 없다. 모든 배움에는 현실에 비추어 습득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정말 이치에 맞는지 알아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라는 의문을 던질줄 아는 능동적인 자세를 가져야한다. 지식의 노예가 아닌 지식을 지배 했을 때 그 힘이 발휘된다. 우리는 지식과 경험, 관습, 신념들을 지배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그 틀에 갇혀 산다. 예를 들어보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의 자세를 가진 사람은 항상 남에게 베푸는 삶을 산다. 하지만 자신의 베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 그런 경험이 생기다보니, 자연스럽게 '사람은 모두 이기적이며, 남을 돕는 것은 바보같은 짓'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이 바뀐 후 주변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를 떠난다. 


      위에 변화는 우리가 늘상 겪는 일이다. 노력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 버리는 것, 몇 개의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를 하는 것, 모든 사람의 행동을 하나의 틀로 잡는 것, 자신의 도덕적 잣대를 남에게 들이미는 것 등. 자신의 경험과 주변사람들의 말을 가지고 틀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결국에는 세상을 보는 시야는 좁아지고, 남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며, 세상을 다 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세상이다. 다른 사람들도 각자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고 산다. 그러다보니 의견충돌이 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서 결국 불행해지게 된다.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세상의 모든 것에 의문을 가져야하며 사색할 줄 알아야 한다. 일상생활부터 인간의 본질까지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을 토대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질문을 던져 봐야 한다. 내 생각들이 정말로 현실과 괴리감이 없는지 말이다. 우리는 '왜 죽는가?', '왜 일부일처제 인가?', '민주주의가 확산된 이유는?', '다수결의 원칙은 항상 옳은가?', '결혼은 꼭 해야되는 것인가?'. 필자도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자, 공황장애가 올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여태까지 경험하고 쌓아온 것들이 부질없는 것 나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고 두려움에 처하게 된다. 이는 짧은 기간 혹은 긴 기간동안 이어진다. 하지만 이를 통해 얻는 것은 새로운 삶이며 자유이며 희망이다.


     생각의 기준은 항상 현실이어야 한다. 진리란 보편 타당한 것을 말한다. 즉 현실에 부합되는 생각일 수록 이치에 맞으며 합당하며 합리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상상, 환상, 망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노력해야 하며, 가치있는 일을 해야 하는가?'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많은 인력을 필요로한다. 저비용 고효율을 내기 위해서 한가지 일만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 여러가지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했고 이는 우리나라 취업준비생이 '스펙'을 위해 피터지게 노력하는 이유중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 가치있는 사람이 되어라는 이데올로기를 심었고, 가치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은 '똥싸는 기계, 잉여인력, 백수, 히키코모리' 같은 부정적인 단어로 그들의 삶을 철저하게 하류 인생으로 만들었다. 


     역사학 교수 유발 하라리의 호모 사피엔스 책을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지 않은 유인원에 불과했으며, 유전적 돌연변이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힘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신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신을 통해 씨족과 부족을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기존 동물에 없었던 공동체 연합을 통해 인간은 모든 종들을 지배할 수 있는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 4대 문명에 농업혁명이 발생했으며, 수렵채취 문화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농업혁명을 통해 많은 쌀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잉여 인력은 신을 숭배하고, 동상을 조각하며, 일꾼들을 지배하는 엘리트가 나타났다. 농업혁명을 통해 인류는 좀 더 진보했다고 할 수 있는가? 생산력의 확대를 통해서 인간은 좀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수렵채취만 하던 사람들이 매일 같이 쭈구려서 잡초를 뽑고 이삭을 줍는 것은 큰 고통이었다. 흉년이 들지 않을까? 동물들이 논을 망치지 않을까? 생각하며 미래를 걱정한다. 배고플 때 일어나 움직이고 여유가 있을 때는 들판에 누워 하늘을 보며 여유를 즐기던 수렵채취 때와는 다른 생활이다. 인간은 동물 이상으로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떠한 것도 없다. 우리는 다른 동물과 같은 생명체 이며, 신을 통해 선택받은 신의 자식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의 자식이라는 명분하에 지구를 지배하고 파괴하며 동물들을 무참히 살육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 세계에서도 돈이 많고 적음에 따라 계층을 분류하며 서로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철저히 그들만의 생각이며 세상이다. 현실은 동물과 인간과의 차이를 두지도 않았으며, 돈이 많고 적음에 따른 계층 분류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은 인간들이 만든 그들만의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관념들이 존재한다. '천부인권' 하늘이 인간에게 준 권리, '자유, 평등, 박애' 18세기 중세시대 민주운동에 근간이 된 권리 등 이는 사람이 만들어낸 권리 일 뿐, 현실은 어떠한 권리를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우리 인류는 엘리트 주의가 아닌 자유주의로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로의 선택을 한 것 뿐이지, 그 어떠한 천부적인 권리는 애당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동양에서는 노자, 공자 등 도덕철학을 기반으로한 유교사상으로 국가를 다스렸으며, 유럽 아메리카는 철저한 법치주의를 통해 국가를 지배하였다. 이는 보편적인 진리가 아닌 어떠한 사상을 기반으로한 국가 통치라는 것이다. 즉 유교사상도 진리는 아니며 법치주의또한 진리가 아니인간이 선택한 사상을 통해 이데올로기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인간은 이러한 틀에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과 이데올로기가 잘못됐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선택하고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사상을 절대적인 것, 천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맹신하여 자신의 삶의 틀로 삼고자하면 자유로운 세상에 틀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의 말씀처럼 자신의 모든 속박과 틀을 해탈해야 자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돈에 대한 개념


    [그림 2]


     돈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수단에 불구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이지. 돈이 목적이 되는 삶은 잘못되었다. 어린 시절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여 큰돈을 벌었다고 해보자. 하지만 그는 돈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돈을 벌었으나 돈 자체가 행복이 될 수 없음을 말한다. 또한 돈은 단순히 수단이 아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돈은 가치를 나타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물가가 상승하는 이유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많아지지만, 통화 즉 돈이 자체의 수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당연히 돈의 가치는 올라간다. 그래서 한국은행이 돈과 가치의 일정비율을 맞추기위해 통화를 발행하는 것이다. 모든 직업은 가치를 생성하고 그에 대한 보수로 돈을 받는다. 그러기에 돈이 많음은 즉 세상에 많은 가치를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보단 '내가 세상을 유용하게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유의미하게 만듬을 알 수 있으며 직업에 대한 사명감 또한 생길 수 있다.


    실패와 좌절 고통을 피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라.


    [그림 3]


     모든 사람은 실패와 좌절 고통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성공을 위해서는 이것을 포용해야 자신의 가치가 상승곡선이 될 수 있다.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나는 천번의 실패를 한 것이 아닌, 천개의 실패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라고 말했다. 실패에 대해 두려워 하는 자세는 모든 일을 할 때 걸림돌이 될 것이다. 현실에는 항상 실패는 존재한다. 자신의 생각은 실패하지 않았으면 하지만 현실은 실패하기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자. '현실에서 실패할 수도 있기에 실패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초연하게 생각해보자.


    나 자신을 알라.


    [그림 4]


     모든 일을 할 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은 하나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자신을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때 두려움이 생긴다면 무엇이 두려운지 왜 두려운지 정말 그것이 두려운 존재인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성찰이라고 하며 자기관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명상은 주로 스님들이 하는 수행으로 보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IT 성지인 실크밸리에서는 자기 통찰력과 자기관찰을 위해 명상을 한다. 명상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며, 그를 통해 통찰력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자체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고 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지라고 하며 자신의 행과 불행은 자기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는 불행하고자 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라고 하며, 행복하고자 한다면 환경에 상관없이 행복해 질 수 있다고 한다. 뇌과학을 통해서 보면 중뇌와 소뇌는 우리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무의식의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대뇌는 이를 보고 판단을 하는 이성을 담당한다. 이렇게 체계가 분리되어있지만, 우리는 무의식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 자체로 여기기 때문에 생각과 감정에 울고 웃게 된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되며 생각에 지배 당하지 않을 수 있다.


    맥락없는 자기계발은 지양해라.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서 자기계발을 하며 스킬을 성장시켜야 한다. 어떤 자격증이 좋더라, 어떤 기술이 좋더라하며 이것저것 흐름없이 여러가지를 배운다면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분산 시키는 것과 같다.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들을 꾸준히 증진해야한다. 현실을 바르게 보는 눈이 열려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공부하고, 경험하고, 실험해야 한다. 다 안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하며, 아무것도 모른다고 회피해서도 안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현실에 가까워지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원동력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라.


    [그림 5]


     모든 일을 할 때 원동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게으르고, 편안한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일부). 하지만 이것은 그들의 천성이 게으른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가게되며 먹고 살기 위해 취직을 하지만 그 직업이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미래가 보장되며 안정적인 직업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먼 직업을 선택한다. 이는 한국 문화의 문제점을 나타낸다. 미국과 달리 블루칼라의 가치를 무시하고, 무조건적인 화이트칼라를 추구하다보니 자신이 원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것이라면 당연하게 지양한다. 어떤 창의적인 생각이라도 그것을 위해 일하는 직원과 기술이 없다면 그 생각은 실현 조차 될 수 없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창의적인 생각 자체만 가치있다 생각하며,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손과 발에 대한 가치를 보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대학 진학율이 높아지고, 기획을 하는 사람들만 늘어나다 보니, 생산을 위한 인력이 부족한게 현재 대한민국 현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블루칼라의 근무환경 개선에 어떠한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취업준비생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하고 있다. 정말 암담한 현실이다.  


     노동과 놀이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노동은 돈을 벌기 위해서 싫어하는 일이라도 하는 것을 노동이라고 하며 놀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놀이라고 한다. 우리는 현재 노동을 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노동이 아닌 놀이가 된다.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공자의 말이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롤을 하기 위해서 밤을 새울 수 있고, 수다를 떨기 위해 쉬지 않고 4~5시간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가 정말로 게으르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린 게으른 것이 아닌 정말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지 못한 것이다. 



    출처


    [그림 1] http://weekly.cnbnews.com/m/m_article.html?no=111902

    [그림 2]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6DC03C5B40317D19

    [그림 3]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839695&memberNo=4358055

    [그림 4]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31912354912357

    [그림 5] http://kangmyounghun.blogspot.com/2015/08/blog-po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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