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고행상]
'나의 주인은 나지 누가 주인인가?'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이번 정토회 수련을 다녀오면서 느낀 점이 이 글의 주제가 될 것이다. 무엇을 느꼈는지 필자의 경험을 이야기 해보겠다.
300배 절을 했다. 막상 처음 하려니 겁이 났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고 절을 시작했다. 관세음보살 ~ 소리와 함께 절을 시작했다.
절을 하면서 어떤 생각에 집중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절을 하고 있는 나의 몸과 숨과 고통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정토회에서는 상상과 망상에서 벗어나 지금 현재 나의 모습과 감각에 집중하라고 했으니 말이다.
108배가 지나 간 후, 내가 왜 절을 하고 있는가.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불교라는 색채안에서 그냥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려고 한 것이 아닌 무의식에서 생각이 올라옴을 알았다. 힘들다. 몸이 힘드니까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배가 고플 때 우리는 아 배고프다를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로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닌 무의식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잡아 채기 때문에 내가 배고프다고 느끼는 것이다.
경험에 의한 나의 주관적인 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이 실상인지 아닌 단순히 나의 인식 작용인지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의 수행을 통해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의식하는 대뇌가 있고, 육체의 욕구를 관장하는 무의식 부분이 있다.(관장하는 뇌 기관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또한 무의식 부분은 나의 업 즉 내가 살아오면서 얻은 경험과 나의 시비분별작용, 옳고 그름 좋은 것과 싫은 것의 기준이 무의식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라고 느끼지만 배가 고프면 배고픈 생각이 떠오르고, 저 사람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나쁜 감정이 떠오르고 한다. 그리고 이 생각을 의식적으로 잡아서 시비를 따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가 말하는 업인 것 같다.
무수상행식, 즉 나의 좋고 나쁨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과 인식은 결국 나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인식을 나의 본성이라 생각하지 아니하고, 이를 관찰하여 정말 그것이 그러한가를 현실과 대조하여 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래 제법이 공한 법이니, 절대적인 시비를 따지지말고 감정적으로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즉 도일체고액 마음에 걸림을 없앨 수 있음을 말한다.
명상과 절 모두 내 몸의 감각과 떠오르는 무의식의 생각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나의 의식(대뇌)이 이에 따라가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지혜를 발휘해 모든 상황을 잘 헤쳐나가야 한다. 우리 인간들은 현재 나의 감정과 무의식의 생각이 온전한 나라고 여기며 본성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회, 문화,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것이니 모두 무상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정말 그런 시비가 우리에게 좋고 그름이라고 생각된다면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말고 이를 나와 공동체에 잘 영위할 수 있도록 지혜롭게 행동해야함을 알아야 한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 그리고 온갖 잡생각에 사로잡혀 잃어버린 나의 감각에 집중하여 감정과 무상한 시비분별에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온전한 지혜를 발휘해야한다.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한다. 바른 행을 통해 산란한 마음을 일경으로 머물게하며 미혹을 제거하여 진리를 증득한다.